개성중 在京 총동창회
Staying in Seoul total alumni Kaesung middle school
이제 모두 만나봅시다
헤어져 살아오던 동창들
개물성무 동문이란 것은
지울 수 없는 학창시절의 필연...
       
 
살아가는 이야기  
       
작성자 최진현13회
작성일 2009-03-17 (화) 15:03
ㆍ추천: 0  ㆍ조회: 2303      
http://www.kaesung.or.kr/cafe/?kaesung.452.4
“ 백년전우 - 월남전과 한국 ”


우측하단 스피커모양 눌러서 볼륨을 올리세요

국군방송TV - KFN

♣ 백년전우 - 전우여 영원하라! ♣
(주월백마30포병전우회)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머나먼 이역 베트남 땅에서
조국의 이름을 걸고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정글에서 피와 땀을 흘렸던 월남전 참전용사들!

월남전 귀국후, 1989년 4월30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월남전 참전용사 전국 만남의 장’을 통해 감격의
재회를 했던 주월백마 30포병대대 전우들!

다시 만나서 전우회를 결성한 지 20년,
월남전에서 함께 군 생활한 지 40여년,
지금까지 3개월에 1번씩 만남을 가져오며
뜨거운 전우애를 이어오고 있는데...

사선에서 살아 돌아온 역전의 용사!
9사단 백마30포병대대 전우들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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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현13회
작성일 2009-03-17 (화) 15:03
ㆍ추천: 0  ㆍ조회: 2303      
http://www.kaesung.or.kr/cafe/?kaesung.452.4
“ 백년전우 - 월남전과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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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전우 - 전우여 영원하라! ♣
(주월백마30포병전우회)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머나먼 이역 베트남 땅에서
조국의 이름을 걸고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정글에서 피와 땀을 흘렸던 월남전 참전용사들!

월남전 귀국후, 1989년 4월30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월남전 참전용사 전국 만남의 장’을 통해 감격의
재회를 했던 주월백마 30포병대대 전우들!

다시 만나서 전우회를 결성한 지 20년,
월남전에서 함께 군 생활한 지 40여년,
지금까지 3개월에 1번씩 만남을 가져오며
뜨거운 전우애를 이어오고 있는데...

사선에서 살아 돌아온 역전의 용사!
9사단 백마30포병대대 전우들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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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현13회    
작성일 2007-05-08 (화) 14:26
ㆍ추천: 0  ㆍ조회: 2378      
http://www.kaesung.or.kr/cafe/?kaesung.275.4
“ 달맞이 고개넘어 송정가는길 ”

예전엔 달맞이고개 철로변에는 울타리가 없었는데 지금은 철조망이 쳐져있다.
철로위를 걸으며 속삭이던 그날이 아련한데...그때는 송정이나 일광으로 갈려면 기차가 유일했는데
지금은 터널이 뻥뻥 뚫리고 도로가 쭉쭉 뻗어 이 동해남부선 철로가 쓸모가 있을지 모를 정도로 세상은 변했다.





저기 터널 구멍은 그대로인걸 보니 반가웠다.



오륙도 앞쪽에 저 산언덕은 '신선대'였던가 그랬는데 아파트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꼭 저런데 지어야만 하나?



가로등이 하나둘 들어오는 바닷가에서 노출을 한껏 놓고 찍어봤다.



달맞이 고개...저 꼭대기 24시간 '베스타' 찜질방은 누워 있어도 바다가 보인다.



백사장은 모래가 많이 쓸려가서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아베크족들은 늘상 붐빈다.



해월정...송정으로 넘어가는 달맞이 고개의 정상이다.



달맞이 고개...정말 많이 변했다.



거기 나그네 양반, 쉬어 가시구려...





불전에 기도하고 나오니 진사님은 어디갔나?







국도 7번으로 따라 올라가면 경치가 좋은곳이 많습니다. 우리 강토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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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현13회    
작성일 2007-05-03 (목) 15:10
ㆍ추천: 0  ㆍ조회: 2136      
http://www.kaesung.or.kr/cafe/?kaesung.274.4
“ 그녀와 통도사 ”
>

하늘 ♥ 입니다.
참으로 최진사님이 무엇을 느끼시나 봅니다
4 월 27 일 금요일 밤에
40 년전의 옛 여인으로 부터 처음으로 전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사귀던 시절엔 전화가 흔하지 않아,
서로 편지로 약속하고 또 구두로 약속하고 하여 만남을 이어 가던 때이었습니다.
한번도 전화로 주고 받은 대화가 기억에 없습니다.
서로 무척 좋와 했으나 사회가 인연을 만들어 주지 않았답니다.

가끔 생각이 났지만
너무 오래 전의 희미한 40 년전의 기억밖에 없었습니다.
20대의 젊은 남녀로 각인된 채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최진사님이 "사랑없인 난 못살아" 를 들려 주시던 그 바로 시각에
그 녀에게서 처음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기억 할 수 없는 tone 의 ......., 그녀의 목소리 였습니다.

그런데 ~~
그런데 그 녀가 바로 통도사에서 지금까지 어언 20 년 동안 기거하고 있었답니다.
스님은 아니지만 글을 쓰면서 .....(이대 국문과 출신입니다)

최진사님이 올려 주신 음악과
여기 아래 통도사 서운암 사진이 너무 우연의 일치 일까요 .... ?
너무 놀라 최진사님께 무어라 감사드릴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통도사 사진 더 있으면 올려 주십시요..
인터넷상이라도 가까이 보고 싶습니다


(www.xop.co.kr 자유게시판에서...)





































4월29일 마지막 일요일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녀의 모습이 좀 더 선명하게 떠오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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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현13회    
작성일 2007-05-03 (목) 15:07
ㆍ추천: 1  ㆍ조회: 1463      
http://www.kaesung.or.kr/cafe/?kaesung.273.4
“ 서운암의 금낭화 그리고 장독대 ”

통도사 서운암에 금낭화가 다 피었다.
산비탈 하나가득 금낭화 초롱이다. 서운암 꽃 무더기에 묻혀 하루를 보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초파일 등축제보다 자연이 만들어낸 빛깔이 더욱 곱게 가슴에 새겨진다..









서운암은 야생화로 유명하지만 수많은 장독들이 늘어선 장관으로도 유명하다.






된장 내음이 코끝을 스치니 그또한 진풍경이다.



근심과 번뇌속에 사는 최진사이지만 절에 가서도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 최진사는 아직 신심이 없다.

대신 부처님 문제는 김상병이 모두 해결해준다....ㅠ.ㅜ 아마 하나님 문제는 최장로님께서 해결해 줄것이다.(?) ^^*



 
  4
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7-03-27 (화) 17:54
첨부#1 naksung01.jpg (55KB) (Down:285)
ㆍ추천: 0  ㆍ조회: 1701      
http://www.kaesung.or.kr/cafe/?kaesung.238.4
“ "낙성대"를 아십니까? ”


서울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니면서 "낙성대역"을 수 없이 지나쳤지만 그게 어떤곳인지는 몰랐다. 그 궁금증을 풀기위해서 낙성대를 찾았다. 낙성대 전철역에서 관악구민운동장 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곳에 낙성대가 있었다. 들어서면서부터 돌에 새겨진 "落星垈" 세글자 아! 별이 떨어진 곳이구나~ 필(?)이 왔다.



낙성대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장군 강감찬의 출생지이란다. 강감찬 장군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우는 등 우리가 어릴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존경받는 장군이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 따라 '별이 떨어진 터'라는 뜻의 낙성대라 이름하였다.


1

들어가며 왼편에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 하나가 있어 낙성대의 위치를 상징해 오고 있었다. 탑에는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고려의 백성들이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장군의 집터에 사리탑 방식의 삼층석탑을 세웠단다. 이 탑은 원래 강감찬이 태어난 봉천동 218번지 집터에 있던 것을 1973∼1974년 정화사업에 따라 현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의 사당.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강감찬의 출생지로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으로 전해오고 있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안국사 건물이 숲쪽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3월의 마지막주 산수유는 활짝피고 목련도 몽오리를 터트릴려고 준비한다.



강감찬장군의 사당인 안국사. 저 현판의 글씨도 박대통령의 글씨가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것은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걸어 놓으면 따고 들어가지 말라는 표식이다.



강감찬장군의 영정




향불이 늘 피워져 있는 듯 연기가 피어 오르고 향내가 은은하다.



관리소 옆으로 나가는 쪽문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그곳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충동이 일어난다.



전통의 한국 담장이 정겹게 보여서 한 장 찍어 봤다.



서울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게 자랑스럽지 않으세요? 변두리라 그런지 노숙자도 없고 아주 조용한 곳이다. 손자 있으신 전우님들 손잡고 와서 역사교육 시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뒷동산에 숲이 머지않아 울창해 질것이다. 담장을 기와로 치장해 놓은걸 보니 옛날 고향생각이 난다.




박정희 대통령이 강감찬의 생가터 일대를 성역화하여 길이 보존하고 현창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한 것은 1973년 여름의 일이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이 곳 일대의 약 1만 평의 땅을 물색하고 그 해 11월부터 조성 작업에 들어갔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은행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잘 크고 있다. 박대통령이 관심을 많이 기울인 곳이라는게 느껴진다. 




강감찬의 출생지는 지금 공원터의 동북쪽 약 100m 정도에 위치한 관악구 봉천동 산이라는데..1,060년전 이야기인데, 그 시절 이곳은 무진장 산골이 아니었을까?



(촬영:
www.xop.co.kr / 최진사)



125.241.126.42 참전인: 2호선 낙성대역이 서울대역 다음이라서 시골서 올라오신 분은 낙성대도 대학인줄 아는 분도 계십니다. 강감찬장군 태어난 봉천동이 고렷적이나 조선때나 외진 곳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서울이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했던 70년대부터 가진 것 없이 상경한 지방사람들이 몰려들어 난개발지역이 되었죠. 신림동도 마찬가지고. 재개발하느라고 최근까지 애를 먹고 있습니다. 강감찬장군은 봉천동에서 태어났는데 이순신장군은 어디서 태났는지 아십니까. 충남아산은 본향이고 태어난 곳은 한양 건천동(乾川洞)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산밑에 지금의 행정구역상 중구 인현동입니다. 조선시대때는 북촌으로 불린 곳이죠. 사육신의 한사람인 박팽년의 집도 남산밑에 있었습니다. 셤에 나오는 건 아니니 부담갖지 마시고 걍 여담삼아 한 말씀 드렸습니다요. -[03/2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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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ing in Seoul total alumni Kaesung middle school